[choen.chosun.com] 김수정 화백 "둘리 풍선 든 아이 보고 눈물"
최근 SBS를 통해 방영되며 큰 인기를 누리고 있는 '아기공룡 둘리' 원작자 김수정 화백이 조선일보가 만드는 대중문화 전문 웹진 '조엔(http://choen.chosun.com )'에 글을 보내왔습니다. 갖은 어려움을 뚫고 '아기공룡 둘리' 만화영화 제작을 마친 김 화백은 "몇년 전 길에서 '둘리' 풍선을 들고 기뻐하는 아이를 보고 눈물 흘린 뒤 재미있는 '아기공룡 둘리' 만화영화를 만들어주겠다는 다짐을 했다"고 털어놓습니다.
4살 아이가 든 둘리 풍선에 눈물 짓다 만든 만화영화 ‘아기공룡 둘리’
‘아기공룡 둘리’ 김수정 화백의 약속, “얘들아 아저씨가 멋지고 재미있는 만화영화 많이 만들어 줄게”
김수정 / 만화가 대표작 ‘아기공룡 둘리’, ‘일곱 개의 숟가락’, ‘귀여운 쪼꼬미’ 등
편집자주: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만화 캐릭터 둘리. 최근 SBS를 통해 새로 제작된 ‘아기공룡 둘리’ 만화영화 시리즈가 방송되며 어린이는 물론, 둘리와 함께 유년 시절을 보냈던 성인 시청자들에게도 커다란 기쁨을 선사하고 있다. 동 시간대 다른 채널을 압도하는 높은 시청률을 기록 중. 그러나 이 시리즈가 나오기까지 김수정 화백은 열악한 제작 환경 속에 갖은 고민의 시간을 보내야 했다. 그런 그가 요즘 느끼는 소회를 ‘조엔’에 보내왔다. 2회에 걸쳐 김 화백의 글을 소개한다.
![2009030901318_1[1].jpg 2009030901318_1[1].jpg](files/attach/images/101/815/2009030901318_1[1].jpg)
사진제공 손홍주
2001년 가을, 나는 승용차로 예술의 전당 앞을 지나고 있었다. 주말인데다가 이제 막 오후 공연이 끝났는지 출구를 빠져 나오려는 많은 차들과 엉켜 느린 걸음으로 가고 있었다. 유난히 초가을 햇살이 따사롭게 느껴지던 그날 오후, 가로수 그늘이 한 없이 여유로워 보이던 보도위로 작은 그림 하나가 프린트 되듯 내 시야에 들어왔다. 너댓살쯤 되어 보이는 작은 여자아이 하나가 가로수 아래 쪼그리고 앉아 놀고 있었다.
한 손으로 연신 땅을 파듯 뭔가 열심히 쓰고 있는 듯 보였는데 다른 한 손에 들려있는 풍선 하나, 둘리가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고 있는 헬륨풍선이었다. 아이가 몸을 움직일 때마다 둘리도 덩달아 이리저리 아이를 좇고 있었다.
“ .......? ”
나는 짧은 순간, 모든 것이 정지된 듯 물끄러미 그 아이를 바라보았다.
" 저 꼬마가 둘리를 좋아한다고? “
“ 쟤가 둘리를 알아? ”
그 광경을 보고 있자니 갑자기 알 수 없는 서러움이 목젖을 타고 올라왔다. 지금 예술의 전당에서 하고 있는 둘리 뮤지컬을 보고 나온 걸까? 아니면, 그냥 오다가다 별 생각 없이 길거리에서 산 풍선일까? 그것도 아니면, 아이의 의사와 상관없이 엄마가 사준 걸까?
의미 없이 산 풍선이라고 하기엔 행여 놓칠세라 고사리 같은 주먹으로 꼭 쥐고 있는 아이의 손이 너무 행복해 보였다.
“.........”
갑자기 눈물이 났다. 별 이유도 없이, 왜 이렇게 마음이 아려올까, 난 저 애를 알지 못하고, 저 애 역시 나를 모르는데 왜 이렇게 눈물이 나지? 저렇게 좋아하는 꼬마에게 둘리를 마음껏 보여주지 못해서?
“........”
그것은 아마 애니메이션 둘리를 만들고 싶어도 당장 만들 수 없었던 여러 상황들이 자괴감으로 똘똘 뭉쳐 자기 연민에 빠져들게 했나 보다. 그래, 아가야, 나중에 이 아저씨가 정말 멋지고 재미있는 만화영화 많이 만들어줄게, 꼭!
백미러 너머로 점점 멀어져 가는 꼬마를 향해 나는 몇 번이나 다짐했다. 그날의 약속이 지금 내가 애니메이션을 만드는 첫 번째 이유다! 이제 아기는 자라서 초등학생이거나 중학생 정도 되었겠지. 지금 둘리를 보고 있을까? 느낌은 어떨까? 과연, 그날 그 앞을 지나치며 했던 약속은 지켜 진 걸까?
“멋지고 재미있는 만화영화.......”
![2009030901318_2[1].jpg 2009030901318_2[1].jpg](files/attach/images/101/815/2009030901318_2[1].jpg)
사람들에겐 나름대로의 둘리에 대한 추억을 갖고 있을 것이다. 그것은 가장 처음 접한 매체가 뭐냐에 따라 회상하는 추억도 조금씩 다르다. 80년대 초 만화잡지 보물섬을 통해 처음 둘리를 접한 세대, 80년대 후반 KBS 애니메이션을 통해 둘리를 접한 세대, 90년대 중반 극장용 애니메이션으로 처음 둘리와 조우한 세대, 그리고 2000년대, 극히 정형화되고 예쁘게 포장된 교육용 컨텐츠(캐릭터 상품 등) 플래시 애니메이션으로 접한 세대 등, 둘리가 나온 후 길지 않은 시간 동안 사람들이 원하든 원하지 않든 조금씩 다른 이미지로 접근 되었다. 그것은 2009 둘리를 제작함에 있어 거대한 벽이 되어 내 앞을 가로막았다.
어느 층을 주 대상으로 할 것인가? 어떤 컨셉으로....? 과거의 둘리? 중반의 둘리? 지금의 둘리? 미래의 둘리? 유아용? 아동용? 가족용? 가족용? 만화 또는 애니메이션 이라고 하면 무조건 “어린이용”으로 치부되는 우리나라에서 과연 ‘심슨’이나 ‘패밀리 가이’는 고사하고 ‘가족용’이라는 수사가 붙은 애니메이션이 가당키나 할까? 하지만, 둘리는 단순 유아 & 아동용이 아니지 않은가. 참 많은 날을 고민하고 고민했다.
그리고 그 결과물은 지금 여러분이 보시는 대로다.
Updated : 2009.03.09 19:35
“둘리 통해 우리 문화에 대한 자긍심 심어주고 싶었다”
‘아기공룡 둘리’ 김수정 화백 “정부 지원 못 받아도, 우린 국적 없는 애니메이션은 거부한다”
‘아기공룡 둘리’ 첫 방송이 나간 후, 아니나 다를까 여론은 분분했고 인터넷은 시끄러웠다. 성우에서, 테마송, 둘리 얼굴, 스토리, 심지어 화질까지 문제삼는 다양한 의견들이 올라왔고 거센 반향에 스태프들은 당황했다 아니 놀랬다. 총감독만 빼고, 총감독만 빼고....., 총감독만 빼고.....? 총감독은 뭘 믿고 있었을까? 아니 무슨 생각으로 모조리 교체했을까? 죽 쑤면 30억이 날아가는데?
소위 만화, 애니메이션을 좀 안다는 청소년(일부 성인도 포함된다)들은 우리 만화, 애니메이션을 인정하려 하지 않는다. 그들의 뇌리에는 온통 일본 일색이다. 그들과의 대화나 토론에서 섣불리 한국만화, 한국 애니메이션을 들먹였다가는 ‘왕따’당하기 십상이다. 한마디로 바보가 되는 것이다. 논의 자체가 안 된다. 아이들은 일본인이 아니다. 한국인이다. 한국인이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아이들에게 애국심이 없냐고? 천만에, 아이들은 솔직할 뿐이다. 한국 만화, 한국 애니메이션에 대한 좌절과 실망이 단단한 화석 같은 콤플렉스가 되어 그들을 절망케 하고 상처 받게 하고, 그래서 엄청 화가 나 있을 뿐이다. 그것을 풀어주고 달래주고 위로해주며 해결해 주어야 하는 것이 우리 어른들이 할 일이다.
나는 둘리를 통해 우리 청소년들에게 한국 만화, 한국 애니메이션, 나아가 우리 문화의 자긍심을 심어주고 싶었다. 어디서 누구를 만나 만화를 얘기하고, 애니메이션을 말할 때 “우리에겐 둘리가 있어” 라고 자랑스럽게 말하는 우리 청소년들의 모습을 보고 싶었다. 그것이 내가 애니메이션을 만드는 두 번째 이유다.
세 번째 이유는, 나 스스로의 존재감 때문이다. 내가 살아있음을 확인하는 작업이고 사는 이유다. (너무 거창한가?) 내가 소년 일 때 나는 꿈을 꾸었다. 지금도 꿈을 꾼다. 전 세계인들이 나의 만화가 그려진 셔츠를 입고 거리를 활보하고 있는 꿈을, 나는 정말 살아있는 애니메이션을 만들고 싶었다. 영화에서처럼 진짜 배우가 연기하듯, 그런 표정들을 그림으로 완성하고 싶었다.
만화는 단순하고 황당무계하다는 통설을 뒤집고 현실과 유리되지 않는 진솔한 삶의 모습들을 그리고 싶었다. 때로는 영화 같은 영상을, 때로는 만화책을 보듯이, 그리고는 어느새 내가 그 속에서 같이 숨 쉬고 있는 환상을, 이 얼마나 멋진 일인가?
이 행복한 작업에 국제 규격(?)에 맞춘답시고 어설프게 빵 쪼가리에 포크와 나이프를 들고 설익은 스테이크를 써는 그런 누를 범하지 않으려고 했다. 우리 애니메이션에는 적어도 김치냄새와 구수한 삼겹살 냄새 상추쌈에 된장냄새 물씬 풍기는 그런 우리의 모습을 그리고 싶었다. 상가(喪家)에서 빚을 끌어 쓸 망정 우리 정부가 원하는 요건(지원요건)에 스스로 몸을 맡겨 국적 없는 애니메이션을 만들기를 거부했다. 설사 버터 냄새가 묻어나지 않아 외국에 못 팔아도 좋다. 외국 업체와 합작하지 못해 달러를 못 벌어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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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31001355_2[1].jpg 2009031001355_2[1].jpg](files/attach/images/101/815/2009031001355_2[1].jpg)
난 그냥, 내가 그리고 싶은 것을 그리고 싶었다. 어쩌면 둘리는, 앞으로, 영원히, 정부의 지원을 받지 못할지도 모른다. 높은 분께 인사를 잘 안하고, 그들의 입맛에 맞는 애니메이션을 만들지 않기 때문에. 하지만 괜찮다. 그래도 나는 만들 것이다.
경기불황으로 제작비가 반토막이 되면 반토막짜리 애니메이션 만들면 되고, 또 반토막이 되면 반의 반토막짜리 애니메이션을 만들면 된다. 여러분이 사랑하는 만큼 나도 정말 애니메이션을 사랑한다. 그리고 우리만화, 우리애니메이션을 사랑하는 여러분들도 사랑한다!
사랑합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동안에도 우리 팀들은 그래도 미련을 못 버리고 총감독의 눈치를 봐가며 알량한 그 정부지원 좀 받아보겠다고 밤 새워 지원계획서를 쓰고 있다. “쓸데없이......”